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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서 일요일마다 엘 라스트로 (el rastro) 벼룩시장에 갔다. 백 년 넘은 건물 사이로 사람 사는 냄새, 시간이 켜켜이 묻은 온갖 오래된 물건들의 냄새가 진동하는게 좋았다. 유럽에서 제일 큰 규모의 이 장이 서면 골목마다 인파로 북적이고, 사람 수 보다 몇 배는 더 많은 골동품들이 물밀듯 쏟아져나온다. 낡았지만 그래서 빛이나는 온갖 잡동사니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오래된 책들이 유독 완벽해보였다. 내가 늘 보아오던 돌가루가 섞인 빳빳하고, 무겁고, 하얀 종이의 책이 아니었다. 보르헤스와 조이스와 헤세가 쓴 글들은 케케묵은 고서적 안에서 더 깊어진 시간을 품고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거기에 있었다. 오래된 지류의 빛바랜 색과 질감, 그 위로 흐릿하게 쓰여진 검은 활자는 시간을 타고 잊혀진, 잠재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적 오브제로 강력하게 다가왔다.

 

양팔 가득 고서적을 품에 안고 좁은 골목의 수많은 인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바로 그날부터였다. 책과 기억을 향한 애정과 강박으로 나의 작업이 시작됐다.
 
책은 자체로 온갖 기억의 저장소이다. 글과 종이의 몸으로 이루어진 최소한의 물리적 형태로 모든 것들을 담고 있다. 나는 오직 유일무이한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해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책을 분해하고 무언가를 더해 다른 모습으로 창조하는 일이었다. 나는 오래된 책과 검은 활자, 마끈, 각종 지류, 나뭇가지 잔해 등의 잡동사니들을 사용해 컴바인 Combine함으로서 기억의 흔적을 그리고 추적하기로 한다. 오브제들의 낡고 오래된 표면을 강조하면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지류의 빛바랜 색이 중심이 된다. 나는 책의 일부를 찢어 캔버스 곳곳에 붙이는 형식을 취하고, 동시에 손으로 직접 그려내는 행위를 더해 평면 회화의 경계를 허문다. 매우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이 과정에서 책은 일부 살아있는 텍스트만 조금 읽히거나, 아예 읽을 수 없이 파괴된다. 텍스트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고 오히려 하나의 이미지가 된다. 
 
뒤섞이고 바래고 녹슨 채 구성 된 화면은 마치 기억의 편린들이 우리의 뇌 속에서 순차나 인과에서 벗어나 뒤죽박죽 저장되어있는 것과 같다. 나는 끊임없이 기억의 아카이브를 만들어내고, 거기에는 다만 기억해야 하는 실마리들이 있을 뿐이다. 

 

I went to el rastro flea market every sunday in Madrid. I liked the smell of people and the smell of all the old things that were buried in time. When the largest flea market in Europe is held, people are crowded in alleys and there are huge numbers of antiques, more than that of the people in the market. It is old, but because of this, the old books, which are hidden between all kinds of shiny objects, seemed more awesome and perfect. The books weren't the new white paper that I am used to. The writings by Borges, Joyce, and Hesse were in a completely different form, taking a deeper time in the ancient books piled up in the dust. The faded colors and textures of the old tributaries, and the black letters that were blurry on them, came to me powerfully as a symbolic object reminding me of latent forgotten memories. It started on the day when I passed through many people in the alley and came home with my arms full of old books. The result of my obsession with the impulsive collection of books and memories became my element of work.

 

The book itself is a repository of all kinds of memories. It contains everything in the least physical form of the body of writing and paper. I want to interpret the books in my own unique way. The method I could use was to disassemble the book and add something to create a whole different feature. I decided to draw and trace the memory by combining miscellaneous items such as old books, black letters, strings, various papers, and twig debris. It emphasized the old surfaces of the objects and made traces of time visible. In this process, the faded color of the old paper becomes the center. I tore a portion of the book and put it all over the canvas, and at the same time, by adding the act of drawing by hand, I broke the boundaries of flat painting. This work is very improvised, and the book is completely damaged so that only some of the remaining text can be read or not read at all. It loses its meaning as text and rather becomes an image.

 

The screen is scrambled, faded, and rusty, and it is as if the fragments of memory are stored in a jumble without sequencing or causality in the brain. I constantly make archives of memories and only clues to remember rem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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